‘노사모’에서 ‘반노’로
저는 '노사모'입니다.
정확히 하자면, '노변모'입니다. ‘노무현을 위한 변호사 모임’에 이름을 올렸고, 노무현이 아니면 세상이 결단날 것처럼 뛰어다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지 얼마 뒤입니다. 시골 친구가 잊고 있었던 사실 한 가지를 얘기해주었습니다. 97년 대선이 끝나고 한 달 뒤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자그마한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다음 대통령은 노무현이다”, “나는 노무현을 지지할 것이다”라며 열변을 토했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탄돌이(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바람으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람들을 빗댄 여의도판 정치용어)’가 되어 17대 국회에 진출했습니다.
몸은 법사위와 정보위에 있었지만, 외교안보와 남북문제가 제 주된 전공이었습니다.
문제는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과 도저히 조화를 이룰 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원가공개를 거부했던 노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 교육도 산업이라는 노 대통령의 교육 정책,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문제를 조약개정이 아닌 외교부장관 간의 공동성명의 형식으로 텁석 받아버린 외교안보 정책,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 당시 소극적 태도, 신자유주의 결정판 ‘한미 FTA’ 등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대연정 제안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느새 저는 ‘반노’가 됐고, 어느 순간 ‘노까’로 평가받게 됐습니다. 열린우리당을 임종인, 이계안 의원에 이어 세 번째로 탈당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개인적 이야기입니다.
이제 와서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지금, 어느 정치인에 대한 서글픔
저도 설마 설마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구나 했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에 대한 법률적 비난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잠시 옆으로 미뤄두겠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정책의 차이가 개인적 감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점 부정하지 못합니다. 여의도 정치 시절, 여당의원의 본분을 져버리고 정부와 청와대를 지나치게 비판한다는 이유로 당내에서 비난도 참 많이 받았습니다. 라디오나 토론프로그램 출연도 자제를 부탁받곤 했습니다. 한미 FTA 때는 외교통상부로부터 직접 고발을 당해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의원회관 전화와 휴대전화 통화내역도 몇 차례 합법적으로 스크린 당하곤 했습니다. 불법적 요소가 있었는지에 대한 합법적 심사였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습니다만, 긴 시간 동안 저 또한 정신적 외상과 공황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건강이 많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만, 범민주개혁진영의 근본적 정책노선이라는 시각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민주주의, 의회주의, 견제와 균형, 공정한 시장경제, 남북화해협력, 인권신장, 동북아시아에서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의 한국의 위상확보 등이 제 의정활동의 기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전체적 입장에서 나라를 운영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과는 많이 달랐겠지요. 따지고 보면 참 많이도 노 대통령의 정책과 충돌하곤 했습니다.
대선 패배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선당시 핵심참모들끼리의 분석회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권력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없었다. 국민이 투표라는 주권으로 외적 통제를 가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 내적 통제를 가하고 고쳐나갔어야만 했다. 스스로 몰락을 자초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대표하는 나라와 시민과, 좁게는 범민주개혁진영에 엄청난 죄악을 저질렀다.”
지금도 이 생각은 유효합니다. 신출내기 정치인을 비판하기 보다는 노 대통령과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했어야 했습니다. 신자유주의 보다는 공공성을 강조하는, 시장절대주의 보다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강조해야 했습니다. 재벌 보다는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의 정책을 이끌고 보호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행정부와 청와대의 주도에 몸을 내 맡긴 채, 그냥 ‘어~어~’하면서 따라갔던 게 현실입니다.
그랬던 분들이 이제 와서 노 대통령의 잘못을 극단적으로 비판합니다. 형사적 불법차원을 넘어, 무죄추정의 원칙도 깡그리 무시한 채, 언론의 장단에 막춤을 추며 노 대통령을 비판하고 차별합니다. 문제는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로지 노 대통령과 구별 짓는 데만 급급 하는 ‘막가파’식 비난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묻고 싶었습니다. “그때 과연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저도 근신하고 있습니다. 믿고 맡겨준 시민들게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총선의 낙선도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느새 낙선 1주년에서 하루 지났습니다.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노 대통령을 강변하던 주변 분들이 저보다 더 강한 목소리로 봉하마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합니다.
더 이상 메인스트림이 아니면 대통령을 해선 안 된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칼럼니스트 한 분이 고종석 선생님입니다. 2005년 8월 고 선생님의 글입니다.
“노대통령이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남은 임기를 채울 때, 그가 남길 유산은 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파멸적일 것이다. 그의 실패는 사회, 문화적 소수자에 대한 유권자들의 편견을 정당화하고 강화함으로써, 앞으로는 결코 그와 같은 배경의 인물이 정치의 중심에 서지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놀랍게도 그 상황이 도래했습니다. 노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단순한 개인과 가족에 대한 비난을 넘어섰습니다. 이른바 비주류, 야당, 진보개혁진영에 대한 정치적 사형선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왕후장상(王侯將相)은 씨가 다르다는 식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꿈도 꾸지 말라 입니다. 학벌, 지벌, 재벌이라는 기준으로 폐쇄적 그룹에 낄 수 없으면 아예 꿈도 꾸지 말라 입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요, 공화주의에 대한 근본적 쿠데타입니다. 처음부터 씨가 다르다는 식입니다. 중세의 신분제 질서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중세 봉건사회를 시장의 간판을 달고 21세기에 재구축하자는 꼴입니다.
특히 언론과 중간권력의 반응은 두렵습니다.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요. 그야말로 막무가내입니다.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대한 전면적 부정입니다. 잃어버린 10년을 대한민국 역사에서 완전히 도려내고, 역사의 흔적을 삭제할 듯 달려듭니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바탕을 둔 특정정치세력의 뭇매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미이라를 끄집어내 부관참시 하는 수준입니다. 노 대통령 개인의 인격은 물론 가족의 모든 행적과 언행, 주거형태, 차량소유현황, 교우관계, 동선, 사돈네 8촌까지도 심사 대상입니다. 인격적 비난의 대상입니다.
두렵습니다. 무서울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제가 갖는, 5년 단임제가 갖는 생래적이고 치명적 약점은 애써 무시됩니다. 백보를 양보해서 제도화된 대통령 권력이라기보다는 제왕적 대통령제, 사적 대통령제, 일극체제형 대통령제를 가진 대한민국 현실에서 이런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관심 밖입니다. 모든 게 개인 탓입니다. 제도 탓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정치사의 탓은 결코 아닙니다. 온전히 개인 탓이고, 특히 비주류 출신의 노무현 개인이라는 인격체 탓이요, 인격 탓이요, 언행 탓입니다. 질주하는 급행열차는 우리 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 마치 마녀사냥식 비난이 횡행하는 건 아닌지 참으로 염려스럽습니다.
최소한의 관용조차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 말이 합법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잘못된 건 분명 잘못된 겁니다. 죄에 상응하는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국민을 실망시킨 죄라는 ‘신뢰배반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책임을 묻는 방식은 분명 과잉이라는 안타까움이 앞을 가립니다. 마라톤 중계방송에 일희일비하기 보다는 우리사회가 조금만 차분해졌으면 싶습니다만, 쉽진 않겠지요.
두서 없는 변명입니다만, 대한민국 헌정사 중 윤보선 대통령을 제외하곤 이른바 메인스트림 출신이 있었던가요. 이승만 대통령이 그랬던가요. 박정희 대통령의 출신배경이나 가족관계는 어떠했었지요.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왜 육사를 갔었지요.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누구나 아는 얘기 아닌가요. 김영삼 대통령은 물론 어장을 가진 부유한 아버지를 두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메인스트림이라고 칭할 수 있었나요. 김대중 대통령은 신안의 섬소년으로 자라나 불굴의 의지로 대통령이 되신 분 아닙니까.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점에서는 이른바 같은 상업고등학교 출신이었다고 견주어도 되겠지요.
그렇게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법적 징치를 넘어, 인격에 대한 비난으로 몰아가고, 이를 눈덩이처럼 불려 마치 우리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문제로 환치시키고, 또 한편 비주류의 근본 문제이자 태생적 한계로 매도해버리는 방식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상되는 반론도 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특정지역 출신에, 특정지역 대학 출신에, 특정정치인을 지지해온 정치인에 불과하고 역시나 마찬가지 맥락에서 우리사회의 비주류이자 소수파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논쟁 자체가 성립될 수도 없고, 공화주의 이념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논쟁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한없이 안타깝고 우울하고, 괴롭습니다. 부끄러움의 연대의식을 공유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2004년 5월 노 대통령의 연세대 특강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했고, 매 시기 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 항상 약간의 열등감을 갖고 살았던 시골아이여서 아마 성공에 대한 집착이 좀더 강했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성공하려고 열심히 했습니다. … 저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한 대통령이 아니라도 만족합니다. 제 성공의 비결은 인생을 걸고 확실하게 전부를 투자하라는 겁니다”
기업과 공직의 차이에 대한 구분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느냐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된 이후에 대한 준비가 약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이 정책적 실패에서 정치적 실패로 이어졌고, 현재의 위기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범민주개혁진영의 재편과 리셋도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비전과 가치입니다. 정책입니다. 이것이 근본입니다. 그런 다음 사람을 키우고, 정치적 제도로서의 정당을 재정비하고, 다시금 시민의 지지와 염원을 담보할 수 있도록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어제의 쇼트 프로그램에서 받은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오늘 아침 프리 스케이트를 봤습니다. 어제 펼친 연기를 보건데 김연아의 컨디션이 정점에 달해 있는 것 같았고 본인도 강한 자신감을 보여서 기대가 가득이었습니다.
최고의 라이벌이라 할 아사다 마오의 연기를 조금 긴장하면서 지켜봤는데, 바로 엉덩방아를 찧더군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Bravo~가 튀어나옵디다. 와이프도 너무 좋아하고. 적의 불행은 우리의 행복~!
조아니 로세트의 연기는 아무리 봐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습니다. 팔뚝도 두껍고 얼굴도 넓적한 것이 혹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죠. 그래도 야무지게 연기는 잘 하더군요. 2등까지 인정.
안도 미키는 어제의 연기가 영 아니어서 별 기대를 갖지 않았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훌륭하더군요. 본인도 자신의 연기에 감동한 듯 기뻐하고. 3등까지 인정.
드디어 김연아가 나옵니다. 새빨간 Reddish 드레스, 아주 좋습니다. 컨디션도 최고인 것 같고 자신감도 충만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초반의 점프에서의 엉덩방아를 자주 봐왔던 터라 조금은 긴장이 됩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긴장했던 마음이 이내 그녀의 황홀하고 아름다운 피겨에 녹아버립니다. 막바지에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정말 최고의 연기였습니다.
저의 예상 합계점수는 205점, 와이프는 201점. 둘이 내기를 했습니다. 누구의 예상점수가 더 실재에 가까운지. 당연히 제가 이겼습니다. 합계점수 207점, 역대 세계최고기록이라고 하네요. ^^
김연아가 있기 전에는 세계피겨선수권대회가 이렇게 중요하고 멋진 대회인지 잘 몰랐습니다. 시상식에서 한국 국가가 울려 퍼질 것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김연아도 울고, 저와 와이프도 훌쩍훌쩍... 아~ 정말 가슴 뭉클한 일요일 아침이네요.
김연아~ 정말 최고에요! 정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소녀입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세계 챔피언이 된 그녀, 정말 한국 최고의 시민이라 할 만 합니다.
참고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챔피언들입니다. 미국과 일본이 나란히 나눠먹다가 이제 당분간은 김연아가 독점하게 생겼습니다. 김연아 파이팅
2000 미셸 콴(미국)
2001 미셸 콴(미국)
2002 이리나 슬루츠카야(러시아)
2003 미셸 콴(미국)
2004 아라카와 시즈카(일본)
2005 아라카와 시즈카(일본)
2006 수구리 후미에(일본)
2007 안도 미키(일본)
2008 아사다 마오(일본)
2009 김연아(한국)
댓글을 달아 주세요
『후불제 민주주의』이 ‘장하준’ 편에서 저자 유시민 전 장관은 장하준 교수를 제대로 된 경자학자로 평가하고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인으로서 그를 후하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장하준’ 편을 쓴 진짜 목적은 다른 데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장하준이 그의 저서에서 주장하는 것은 경제학자로서의 이론적 얘기이며 그것이 현실 정치에서의 정책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한다.
특히 저자는 “장하준 교수의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과 일부 지식인들을 보면서 적지 않은 당혹감을 느낀다.”고 말하면서 장하준 보다는 그의 책을 오독하고 있는 독자들과 지식인들을 비판한다. 동시에 “장하준의 학문적 주장을 정부의 경제정책을 만들거나 평가하는 데 활용할 여지는 별로 많지 않다.”고 일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장하준 교수의 책에서 한미 FTA 반대론을 끌어낸다.”고 말하며 “‘사다리 걷어차기’를 비판하는 그의 보편타당한 이론을 쌍방 간의 관세ㆍ비관세 장벽의 폐지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한미 FTA 반대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일조의 ‘차원 혼동의 오류’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경제학자의 주장과 대통령의 선택을 같은 잣대로 재단해 규범적 평가를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이야기다.”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매우 의미 있게 읽은 한 명의 독자로서 이번 유시민 전 장관의 장하준과 그의 독자들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조금 못마땅하다. 저자가 장하준 교수의 주장에 반론을 제시하고자 했다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의 텍스트들을 중심으로 심도 있는 주장을 펼쳤으면 좋았을 것 같다. 더구나 그 책을 읽은 독자들의 태도까지 비판하는 저자를 보자면 역시 조금은 까칠하신 것은 아닌지 싶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나 『사다리 걷어차기』등의 저서들은 한미 FTA나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들을 일차적으로 염두에 두고 쓴 책들이 아니다. 그의 책들은 모두가 영어로 씌워졌고 전 세계 독자들을 대상으로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세계적 흐름을 비판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의 책을 읽은 독자가 미국의 독자이든 한국의 독자이든 그 내용과 주장을 통해 자국 상황에 맞는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지 싶다. 한국에서 장하준의 책을 읽은 독자라면 너무도 당연하게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저자가 말 한 대로 이론과 현실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차원 혼동의 오류’가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하준 교수의 텍스트들은 한국이 처한 경제 상황에 대해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준은 최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한미 FTA나 금산분리 등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그는 꾸준히 ‘사회적 대타협론’을 견지해 오고 있었는데 이는 당시의 참여정부나 재계 또는 진보 진영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했었다.
나는 유시민 전 장관의 ‘사회자유주의’가 지향하는 바가 장하준이 그의 책에서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바와 그렇게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충분히 한국 사회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번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장하준’ 편은 꽤 아쉽게 느껴진다. 유시민 전 장관이나 장하준 모두 합리적이고 중도 진보적인 선의의 지식인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 글에서는 장하준 교수의 책에 담긴 내용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후불제 민주주의』를 처음 받아 목차를 훑어보면서 ‘장하준 편’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은 긴장했다. 장하준이라면 한미FTA 반대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준 저서의 주인공일 텐데 저자는 과연 어떤 방향에서 장하준에 대해 글쓰기를 할지가 굉장히 궁금했다.
『후불제 민주주의』의 후반부는 지난 참여정부 5년에 대한 겸허한 돌아보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한미FTA에 대해 유 전 장관이 조금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일까? 물론 내용을 읽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저자는 2005년 참여정부의 수많은 정치적 결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한미FTA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불가피하고 옳은 결정이었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었다.
유 전 장관은 ‘장하준 편’의 서두에 본인은 제대로 공부한 경제학도가 아니지만 누가 제대로 된 경제학자인지 대충 알아볼 수는 있다고 말하면서, 그 예로 김상조 교수, 김기원 교수, 이준구 교수 등을 들고 있다. 모두가 이른바 ‘진보적’ 경제학자들이고 또한 참여정부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분들이기도 하다. 더해서 장하준 교수가 최근에 가장 주목할 만 하다고 한다.
특히 장하준 교수가 중학생일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영문판을 열한 번, 한국어판을 열두 번 읽었다면서 자신에게는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유 전 장관에게 『코스모스』자신이 읽어본 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학 향기가 나는 과학책이며 가장 아름다운 과학 향기가 나는 문학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코스모스』라는 책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동지가 된다. 게다가 장하준 교수는 이른바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그것도 영국과 미국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경제학자가 아닌가. 이런 점이 유 전 장관으로 하여금 장하준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 근거가 된 것 같다.
장하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서 석ㆍ박사 과정을 마친 이후 케임브리지에서 교수를 생활을 시작해 현재까지 근 20여 년간을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경제학의 지평을 넓히고 경제학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미 2003년과 2005년에 뮈르달상과 레온티예프상을 받은 바 있다. 혹자는 현재 한국 출신의 학자들 중에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이로서 장하준 교수를 주저 없이 들기도 한다.
내가 장하준 교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2007년 저서인 『나쁜 사마리아인들 Bad Samaritans』을 통해서였다. 이 책을 2008년 총선이 끝난 후 집어 들게 되었는데 당시 나는 상당한 쇼크를 받았었다. 그 내용에서도 쇼크를 받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2007년 10월에 국내에서 출간되었는데 알고 보니 국내에 발간된 것은 소위 한국어 번역판이었다. 즉 이 책은 『Bad Samaritans』이라는 제목으로 2007년 7월에 영국에서 초판이 출간되었던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Bad Samaritans』을 영어로 집필해서 영국과 미국 등에 먼저 선을 보이고 이 원고를 토대로 번역자와 함께 한국어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국내에서 출간한 것이다.
AMAZON.COM에서 『Bad Samaritans』을 검색해 보면 이 책이 미국에서도 얼마나 인기 있었던 책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AMAZON.COM은 꽤 대중적인 인터넷 서점이지만 그래도 독자 리뷰 란은 상당히 수준이 높고 짠 편인데,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후한 편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추천사를 보면 이게 정말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추천사의 첫 번째는 그 유명한 노엄 촘스키 교수의 이름이 들어있다. 그 다음에는 조셉 스티글리츠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가 있고 그 밑에는 영국의 <가디언>과 <파이낸셜 타임즈>의 유력한 기자와 칼럼니스트가 포진해 있다.
특히 촘스키와 스티글리츠는 조금 낯간지러울 정도로 장하준 교수를 치켜세울 정도다. 책의 내용에 나오지만 스티글리츠 교수와는 절친한 친구이자 스승으로 소개가 되어 있을 정도로 교분이 두터운 모양이다.
장하준 교수는 소위 ‘인터내셔널’하게 노는 사람이다. 한국말보다 영어를 더욱 잘 구사할 뿐만 아니라 영어로 쓴 책으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책의 분야가 사람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어려워하는 경제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소매상을 자신의 중요한 정체성으로 여기는 유 전 장관에게 장하준이라는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하는 경쟁자이자 모두『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동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미FTA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버티고 선다. 둘 모두 경제학자 출신이지만 한 사람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로서 한 사람은 현실 정치에 발을 딛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둘은 그렇게 한미FTA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한미FTA에 관한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서로 다른 입장들을 비교 분석해 보도록 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참여정부의 정치적 실패, 그 원인과 새로운 연합정치의 전망>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사회자유주의’편과 ‘연합정치’편은 하나로 묶여도 이상할 것이 없다. 두 편의 글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특히 ‘연합정치’편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겸허한 반성과 예리한 비판이 함께 담겨 있다.
‘연합정치’편에서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정치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대단히 엄중한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과 열린우리당의 무기력, 그리고 집권 세력의 정치 기반 붕괴 등을 포괄하는 집권세력의 역량 부족을 저자는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특히 탄핵이라는 드라마틱한 이벤트에 의해 어부지리 격으로 과반수 의석을 획득했던 열린우리당은 가장 큰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열린우리당은 쉽게 얘기해서 자유주의 짬뽕 연합이라 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그들의 대체적인 정치적 성향은 사실상 자유주의 우파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구도 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은 소수세력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포함하는 ‘사회자유주의’라고 하는 중도ㆍ진보적 그룹은 사실상 일정한 세력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더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재래식 살상 무기’인 각종 권력을 내려놓았고 스스로를 무장 해제했다. 결국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의 리더십은 적대 세력의 집중적 타격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민과 정부 사이의 소통의 토대라 할 정서적 일체감을 상당히 파괴시켜버렸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보수 신문과의 전쟁에서 참패했고, 참여정부는 이로 인한 정서적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끝이 났다.”고 저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주문했던 청와대ㆍ여당의 분리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악한 결과로 돌아오고 말았다. 정부와 여당의 소통 줄은 끝내 끊기고야 말았고 여당 내에서는 끝없는 파쟁과 내홍으로 스스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열린우리당이라는 새로운 ‘연합정치’를 향한 도전은 처절한 실패로 마감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실패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연합정치’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물론 방점은 긍정적 전망보다는 회의적 전망에 찍혀 있다.
특히 비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 민주당에 대해 그는 상당히 엄중한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각각 배타적 지역기반을 보유한 적대적 공생집단이며 현행 선거제도를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독자적인 사회자유주의 정당을 만드는 방법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는 결국 민노당, 진보신당과 비슷한 길을 가는 것이지만, 매우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다소 우울하지만 희미한 희망을 담은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실패는 매우 뼈아픈 교훈만을 남겨준 채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숙제를 남겨준 셈이다. 진보 세력 내에는 이로 인한 깊은 앙금과 상처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문명의 역행’에 대항하는 새로운 ‘연합정치’는 현재로서는 그 전망조차 내다보기가 어려운 처지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선의 연대’를 주문한 저자의 의지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실행을 위한 선택은 결국 우리의 의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루제로스님/ 블로그에 첨으로 글 남기네요.
2009/04/12 17:37최재천이 이런 글을 썼네요.
그분이 현재 의원이 아닌가 보네요.
참담한 나날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해당화님 잘 계시죠.
2009/04/13 11:11요즘 노 전 대통령 문제때문에 다들 생각이 많으신 것 같네요. 저도 그렇습니다. 최재천 전 의원의 글이 공감이 가는 면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옮겨봤습니다.